저축은행 M&A 핀테크 다크호스 부상
저축은행 M&A 핀테크 다크호스 부상
저축은행 인수 시장에 새로운 다크호스가 등장했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단순한 플랫폼 중개자의 역할을 넘어 금융업의 직접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저축은행 M&A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예금 수신 기능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통해 중금리 대출 및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저축은행 업권 재편과 맞물려 산업 전반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저축은행 매물 증가와 업계 지각변동
저축은행 업계는 최근 몇 년간 고금리 기조와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복합적 악재에 직면했다. 특히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심화되면서 중소형 저축은행들의 재무 건전성이 크게 흔들렸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M&A 시장 활성화로 이어졌다. 정부도 부실 저축은행 정리를 위해 한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며 동일 대주주 보유 한도를 늘리고 금융지주 인수 절차를 간소화했다. 그 결과 시장에는 30여 개의 잠재 매물이 등장했고, 이 과정에서 알짜 매물까지 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의 교보생명 인수 사례는 업계 지각변동의 신호탄이었다. 교보생명은 일본 SBI홀딩스가 보유한 지분 50%+1주를 90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하며 저축은행 업권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이 사례는 대형 금융사가 저축은행을 전략적 자산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 OK저축은행 역시 상상인·페퍼저축은행 인수에 나섰으나 가격 조건 등으로 무산되었고, 향후에도 적극적으로 M&A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대형 금융사와 중견 플레이어들이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가운데, 핀테크 스타트업까지 가세하면서 판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예금자보호한도의 상향도 M&A 시장에 불을 지피는 요인이다. 2024년 9월부터 예금자보호한도는 기존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늘어나며, 금융당국은 최대 25조 원의 신규 예금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자금은 저축은행 업권의 재편을 촉진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으며, 잠재 매수자들에게는 절호의 기회로 해석된다.
핀테크 기업의 전략적 진출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저축은행 인수를 단순한 확장이 아닌 수익 구조 완성의 ‘마지막 퍼즐’로 보고 있다. 대출 비교, 간편 송금, 디지털 가계부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수백만 사용자를 확보했지만, 플랫폼 수수료에 의존한 비즈니스 모델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성 확보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스타트업들은 안정적인 자금 조달 수단인 예금 수신 기능을 확보하고, 직접 대출을 실행하는 은행으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
마이데이터 사업자에게 저축은행 인수는 초개인화 금융상품 제공의 기회다. 고객의 금융 데이터를 분석해 해외여행이 잦은 고객에게는 환전 우대 예금을, 씬파일러에게는 대안신용평가모형을 적용한 중금리 대출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목표 기반 적금’ 같은 맞춤형 상품 설계도 가능해지며, 이는 기존 데이터 서비스의 수익성을 한층 강화한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온투법) 사업자들에게도 기회는 크다. 지금까지는 개인 투자자 모집에 의존했으나, 저축은행 인수를 통해 예금 기반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다. 이 경우 안정적이고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신용대출뿐 아니라 기업금융, PF대출 등 고수익 분야로 확장이 가능하다. 투자자와 대출자를 단순 연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금융업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대출 비교 플랫폼도 저축은행 인수를 통해 수직 계열화 전략을 구현할 수 있다. 현재는 중개 수수료에 의존하지만, 직접 대출을 실행하면 플랫폼 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 브랜드 상품을 설계할 수 있다. 고객은 앱 내에서 대출 비교, 심사, 실행까지 원스톱으로 경험할 수 있어 이탈률이 줄고, 업체는 예적금·카드 등 교차 판매를 통해 수익 다각화가 가능하다. 이러한 전략은 고객 락인 효과를 강화하며 핀테크가 새로운 은행으로 자리잡는 길을 연다.
M&A의 변수와 과제
저축은행 M&A가 활기를 띠고 있지만,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가장 큰 변수는 매물의 건전성이다. 규제 완화로 M&A가 활성화되더라도 재무 상태가 취약한 저축은행은 매수자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최근 OK금융그룹의 연쇄 인수 협상 무산도 가격 문제뿐 아니라 매물의 부실 가능성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교보생명이 인수한 SBI저축은행은 업계 최고 수준의 건전성을 갖추고 있었기에 성사될 수 있었다.
저축은행 업계는 스스로의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자구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5차 PF정상화펀드를 통해 최대 1조 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정리할 계획이며, 내년에는 금리 인하가 예상돼 조달 비용까지 절감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 M&A 시장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매수자들은 매물의 펀더멘털을 면밀히 분석하며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다.
또한 핀테크 기업들이 실제로 저축은행을 성공적으로 인수해 운영하려면 규제 준수 능력, 리스크 관리 체계, 자본 확충 능력 등 전통 금융사 못지않은 역량이 필요하다. 단순히 혁신적인 아이디어만으로는 은행업의 복잡한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으로 꼽힌다.
저축은행 M&A 시장은 현재 금융업 전반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핵심 무대가 되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저축은행 인수를 통해 안정적인 자금 조달 기반과 직접 대출 실행 능력을 확보하며, 기존 플랫폼 중심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금융 강자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 완화와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그리고 업계 자체 구조조정 움직임이 맞물리며 M&A 기회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매물이 성공적인 M&A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량 매물만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며, 매각과 인수 모두 철저한 검증과 준비가 필요하다. 핀테크가 진정한 은행으로 거듭나려면 자본력, 리스크 관리, 규제 대응 능력 등 종합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기에 저축은행 M&A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금융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시험하는 장이 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몇 년간의 결과는 한국 금융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